니가 누군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소쉬르에 의하면 언어활동에는 랑그(언어)와 파롤(화언)이 있는데 랑그는 말을 하기 위해 우리가 따라야 하는 문법같은 것이고 파롤은 우리의 성대를 통해 울려 나오는 소리, 즉 발화되는 순간의 말들을 의미한다. 그는 기호와 지시대상물의 관계가 자의적이라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임승규라고 부를 수도 있고 나이스 가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일일이 불러 주었다는 그 불변의 이름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과 시간에 따라 일회성을 갖는 기호가 언어인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말하는 사람마다 다른 파롤을 행한다 해도 말을 하기 위해 반드시 따라야 하는 문법적 규칙(랑그)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랑그는 개인들이 말을 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같은 것으로 의미는 그 구조 안에서 만들어진 것을 개인이 차용할 뿐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주체는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의미체계 안에 내장돼 있는 의미를 수용할 뿐인 것이다.

90년대 이후 등장한 정부의 슬로건을 돌이켜보면서, 최근 신정부의 닉네임이 정해졌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소쉬르를 생각해 본다.
삼당합당을 통해 탄생한 문민의 정부는 실제로는 군부 정권 실세들이 권력의 중추에 자리를 보전했던 정부다. 아이엠에프 사태 와중에 출범한 국민의 정부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수많은 국민을 '탈국민화'시켰다. 노무현 정부는 자신의 즉자적 결정에 따라 때론 진보와 때론 보수와 손을 잡았고 비판세력의 참여는 철저하게 제한했던 "참여정부였다. 그들은 기의와 기표를 철저하게 분리시키면서 소쉬르의 이론에 충실히 복무했다.

새롭게 정권을 장악한 권력엘리트들은 차기정부의 명칭을 '이명박정부'로 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명박 브랜드 자체가 경제 살리기를 통해 국민에게 각인돼 있기 때문에 그 자체가 파워풀한 브랜드"라고 그들은 설명했다.
지난 정권이 보여준 것처럼 정부명칭 그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정치세력들은 우리 사회의 문법적 규칙을 교묘하게 이용해 국민을 기만해 왔을 뿐이다. "문민의 정부라니까 문민정부겠지, 국민의 정부라니까 국민을 위하겠지, 참여정부라니까 소수의 목소리도 보장되는 열린 사회겠지" 우리는 우리 외부의 객관적 구조 속에 내장돼 있던 언어적 의미를 차용해 정치세력의 프로파간다에 동조해 왔을 뿐인 것이다.

결국 각 개인이 스스로 생각하는 우리의 비전과 희망을 의미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가 재벌과 가진 자를 위한 정권이 되느냐 민중의 삶을 윤택케 하며 사회적 약자의 설움도 보듬을 수 있는 정권이 되느냐는 국민이 어떤 방향을 선택하고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저 언론에서 떠드는 대로 "그렇다니 그렇겠지"라고 생각하며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이 정부가 소수 권력 카르텔의 난장이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이명박 정부" -- 니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가 누구인가? 그것은 소수의 권력 카르텔이 아니라 이 나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새해 아침에도 새벽잠을 물리치며 일어나 묵묵히 일자리로 향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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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ddol | 2008/01/01 13:04 | 斷想모음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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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taekwonluv at 2008/01/30 21:21
좋은 글들이 많이 올라와 있군....
Commented at 2008/04/05 21:0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산야 at 2008/04/05 21:10
시작이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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