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일본의 실수'를 따라가나 - 윌리엄 페섹

미국의 악성부채는 경악할 수준 주택부문 손실 5년 뒤 3배로 늘어
일본型 장기침체로 갈 수도

'싼 자금'으로 발등의 불 끄고
위기가 아니라고 강변할수록 구렁텅이로 빠질 확률 높아져

윌리엄 페섹 (William Pesek Jr.)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 2001년 초 모건스탠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스티븐 로치(Roach)는 경고의 깃발을 들어 올렸었다. "미국이 1990년대 일본의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미국 나스닥지수는 한창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로치가 우려한 것은 경제적 손실 자체보다는, 정책 당국자들이 저금리 자금을 공급해 미국 경제의 치부(恥部)를 대충 감추려고 하는데 있었다.

앨런 그린스펀(Greenspan)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전 의장은 당시 자신이 펼쳤던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요즘도 애쓰고 있다. 당시 로치가 '버블 해결책(bubble fix)'이라 비꼬았던 바로 그 정책이다. 현재의 FRB 의장인 벤 버냉키(Bernanke) 또한 전임자가 썼던 전략을 그대로 이어받는 듯 하다.

그 정책의 핵심은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그랬듯 금리를 내려 유동성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주식시장을 띄우고 죽어가는 부동산시장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2008년이 시작된 지금, 미국의 정책 당국자들은 스스로 과거 일본의 실수를 반복하는 게 아닌지 심각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은 모건스탠리 아시아 지역 회장을 맡고 있는 로치는 "과거 일본으로부터 미국이 배운 단 하나의 교훈이 있다면 버블이 터진 뒤의 난장판을 청소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그보다 훨씬 중요한, 버블을 피하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다"고 말한다.

현재의 미국이 과거 일본을 따라간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미국의 금융 시스템이 1990년대 일본 것보다 훨씬 튼튼하며, 미국의 중앙은행인 FRB가 당시 일본은행보다 더 독립적이라고 주장한다. 또 미국 은행들의 회계는 상당히 투명해, 당시 일본이 그랬듯 손실을 감추기가 힘들다. 게다가 현재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에 육박하고 있어, 디플레이션(deflation)이라기보다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증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지금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점이 과거 일본처럼 은행산업 구조에 있다는 점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현재의 미국과 과거 일본이 가장 닮은 점은 악성 부채다.

미국 악성 부채의 잠재적인 규모는 투자자들을 경악시키고, 미국 재무 시스템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고 있다. 예일대학 경제학과 로버트 실러(Shiller) 교수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주택부문의 손실은 5년 뒤에는 3배로 늘어나, 일본처럼 장기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 동안 규제 당국자들과 투자자들은 그럴 듯한 거짓말을 팔아왔다. 미국은 위기 관리에 철저하고 효율적이므로 금융 위기는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건 그냥 '신화'일 뿐이었다. 오히려 공격적이고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으로 부채를 포장해서 세계 시장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1980년대에도 많은 기업의 임원들과 투자자들이 일본의 경제 시스템을 굳게 믿었다. 만약 문제가 생기더라도 상호출자로 연결된 기업과 은행들이 서로를 구제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 미국 시스템에 대한 믿음은 사라졌다.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의 사례를 보라. 지난 1월 1일 미국 자동차 리스 및 모기지 업체인 PHH는 "제너럴 일렉트릭(GE)과 블랙스톤에 회사를 18억 달러에 매각하려던 계약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밝혔다. 블랙스톤은 PHH 인수 자금 가운데 일부를 다른 투자은행들로부터 차입하려 했지만, 신용경색으로 여의치 않았던 것이다.

싱가포르 소재 LGT 은행의 시몬 그로스호지(Grose Hodge) 전략가는 "부실자산을 상각해야 하는 은행들은 점점 더 대출을 죄고 있고, 유동성 부족으로 경제의 바퀴가 원활히 돌아가지 않고 있다"며 "블랙스톤과 비슷한 케이스가 한 번 더 등장한다면 그땐 정말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1997년 일본에서는 버블이 붕괴되면서 4대 증권사였던 야마이치 증권사가 무너졌다. 최근엔 월 스트리트의 증권사들이 이런 굴욕을 겪을까봐 고객사인 외국 정부를 정말 깍듯이 모시고 있다. 최근 씨티그룹은 아부다비투자청으로부터 75억달러를 급하게 조달했고, 모건스탠리도 중국투자공사(CIC)로부터 50억 달러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제, 미국이 일본과 같은 구렁텅이로 빠져들 확률이 얼마인지 다시 얘기해보자. 굉장히 높지는 않다 하더라도,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2가지 이유를 확보한 셈이다.

하나는 '(상황에 대한) 부정'이다. 아직도 미국이 처한 문제의 강도(magnitude)에 대해 강력하게 부인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위기가 1990년대 아시아 금융위기처럼 전 세계 신용시장에서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자기 부정'은 문제만 더 심각하게 만들 뿐이다.

또 하나는 '중앙은행에 의해 공급되는 싼 자금'이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려, 급한 자금을 주입하는 일은 금융회사들에 잠시 숨돌릴 시간을 줄 뿐이다. 이는 질병의 근원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증상만 완화시켜 줄 뿐이다. 일본은 거의 10년 동안 제로 금리를 유지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디플레이션 상태다. 일본의 경제는 아직도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by imddol | 2008/01/12 22:56 | Issue & Report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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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2008공인중개사 at 2008/07/03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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