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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기호의 소비 혹은 차이화의 기술 천개의 고원, 천개의 생각

written by 권용선

'소비'는 상품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지만, 우리는 상품 그 자체만을 소비하지는 않는다. 소비되는 것은 물질성을 지닌 상품 그 이상이다.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상품들 속에는 계급과 취향과 위계가 있으며, 소비한다는 것은 그것들 모두를 하나의 '기호'로서 드러내고 과시하면서 소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드리야르의 말처럼 상품의 소비란 사용가치의 소비를 포함하면서도 그것을 훨씬 넘어선다.

사람들은 어떤 상품의 구입과 동시에 그것을 구입함으로써 자신을 사회적으로 구별짓고 싶어 한다. 인간의 욕구가 대체로 사물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차이화(사회적 의미화)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부르디외는 소비를 포함한 한 개인의 문화적 실천 전반이 타인과 자신을 구별짓기 위한 행위하고 말한다. 이때 한 개인이 어떤 문화적 실천을 하는가는 단순히 그의 성격이나 취향을 표시하는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부르디외에 의하면, 하나의 선택 속에는 한 개인의 출신배경이나 계급, 교육수준이 고스란히 표현되기 때문이다. 즉, '취향'이 계급의 지표로 작동하는 것이다.

소비는 사회 전체를 균등화하지 않는다. 소비는 오히려 사회 내의 차이를 두드러지게 나타낸다.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을 읽고 쓸 줄 알며, 똑같은 스니커즈를 신고 똑같은 책을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평등은 형식적이고 추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어떤 경우에도 소비에서 개인의 욕구가 선차적이고 이어서 이 욕구가 권위 내지 순응의 요청에 따라서 집단 혹은 계급 위에 등기되는 것이 아니다. 먼저 차별화의 논리가 있으며, 이 논리에 따라 섬세하게 제공되는 상품들에 의해 개인들의 개성과 취향, 욕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옛날에는 출생, 혈통, 종교의 차이는 교환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유행의 차이가 아니라 본질적인 것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것은 '소비되는'것이 아니었다. 현대에서의 차이, 복장, 이데올로기 및 성의 차이조차도 소비의 거대한 연합체 속에서 서로 교환된다. (보드리야르'소비의 사회')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신의 선택에 따라 타인과 다른 행동을 하는 것으로 자신을 구별지음으로써 차이화하고자 하지만, 그것은 사실 '차이화의 강제' 혹은 어느 한 코드에의 복종에 불과하다. 즉 사람들은 문화산업의 시스템에 의해 조사되고 분류되고 목록화된 질서에 따라 만들어진 상품 중에서 자신에게 '적합한'것을 소비할 수 있을 뿐이다. ㄱ러므로 문화산업의 생산자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자기가 판매하는 상품의 잠재적 소비자를 세심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잠재적 소비자들의 취향, 경제적 능력, 사회적 지위 등을 구별하고 그것에 따라 적합한 상품을 제시한다.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미리 자신에게 주어진 수준에 맞게 '자발적으로' 행동하며 자기와 같은 유형을 겨냥해 제조된 대량생산물을 고른다. 아무도 이 촘촘한 문화산업의 그물망으로부터 빠져나갈 수 없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개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체계에 의해 만들어지고 제공되는 상품들에 의해 '개성화'하는 것이 있을 뿐이다. 개성화하는 차이는 개인들을 서로 구별지우고 대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척도 위에서 서열화하며 특정한 모델들 속으로 수렴한다. 그러므로 자기와 타자를 구별하는 것은 어느 한 모델과 일체가 되는 것, 어떤 하나의 추상적 모델 및 양식의 결합 형태에 근거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바로 그러한 방법으로 개인들은 실제적인 모든 차이와 특이성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유행' 역시 이해될 수 있다. 차이화와 유행은 얼핏 서로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비 사회에서 이 둘은 좋은 커플이다. 짐멜에 의하면, 유행은 한편으로 그것이 모방이라는 점에서 사회에 대한 의존 욕구를 충족시킨다. 다른 한편 유행은 차별화 욕구를 만족시킨다. 즉 유행은 그 내용이 변화되면서 현재의 유행이 과거나 미래의 유행과 다른 개별적 특징을 갖는다는 사실뿐 아니라, 언제나 계층적으로 분화한다는 사실에 의해서도 차별화 욕구를 만족시킨다. 상류층의 유행은 그보다 낮은 계츠의 유행과 구분되고 낮은 신분에 의해 동화되는 순간 소멸된다는 사실도 이를 입증해준다. "유행이란 사회적 균등화 경향과 개인적 차별화 경향 사이에 타협을 이루려고 시도하는 삶의 형식들 가운데 특별한 것이다"(짐멜'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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