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3월 01일
<정치학> ‘타자’가 있어야 존재하는 ‘나’
― 스튜어트 홀, 「서양과 그 외의 사회들: 담론과 권력」, 스튜어트 홀 편, 『현대성과 현대문화』(전효관 외 옮김, 현실문화연구, 2001)
문강형준(문화사회연구소)
1.
이 논문이 실린 『현대성과 현대문화』(Modernity: An Introduction to Modern Societies, London: Blackwell, 1996)는 서양에서 소위 ‘현대사회’(modern society)라는 것이 출현하는 과정에 대해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인 분야들로 나눠 분석한 책이다. 앞의 글들이 주로 서양의 관점에서만 현대성의 형성을 서술한 것과는 달리 책의 1부 맨 마지막에 담긴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의 이 논문은 도대체 그 ‘서양’(the West)이라는 개념 자체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다루고 있다.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을 받아들인 홀의 기본적인 관점은 “‘서양’이 지리적이 아닌 ‘역사적인’ 구성물이라는 것”이고 “하나의 관념이며 개념”(407쪽)이라는 것이다. 동그란 공에 동쪽과 서쪽, 위와 아래가 따로 존재하지 않듯, 지구에도 서양이나 동양, 남반구나 북반구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위치지울 수 없는 것을 위치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개념이다. 지금의 ‘서양’이라는 말은 15세기 무렵 유럽의 지도제작자에 의해 유럽지역을 지도평면의 왼쪽 모퉁이에 위치시키면서 탄생한 것이다. 남자라는 개념이 여자를 필요로 하고, 밤이라는 개념이 낮을 필요로 하듯, 서양은 ‘서양 외의 사회’가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동양’(the Orient, the East)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다.
‘서양’이라는 관념은 단순히 이미 만들어진 서양사회를 반영했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관념이 바로 그 사회의 형성에 핵심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일단 생산된 ‘서양’이라는 관념은 역으로 다른 것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실제적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그 관념은 사람들이 어떤 사물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알도록 만들거나 그에 관해 말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것은 지식을 생산했으며 전세계적인 권력관계의 체계를 조직하는 요인임과 동시에 사고방식과 말하는 방식 전체를 조직하는 개념이 되었다. (408-9쪽, 강조는 발제자)
‘개념’(concept)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네 가지 정도의 기능을 가진다. 개념은 (1)분류를 가능케 하고, (2)이미지를 만들어내며, (3)비교의 표준을 제공하고, (4)대상에 대한 특정한 태도를 생산하게 한다(407-8쪽) ‘서양’이라는 개념 역시 마찬가지다. ‘서양’이라는 개념은 (1)세계를 ‘서양적’, ‘비서양적’인 것으로 나누고, (2)그에 따라 ‘서양적’(=도시적, 발전된, 세련된, 합리적인)인 것과 ‘동양적’(=농업적, 저발전된, 거친, 비합리적인)인 것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3)서양을 중심으로 하여 동양을 가늠하게 하고, (4)결과적으로는 ‘서양’과 ‘동양’에 대한 집합적인 태도(가령, 서양을 본받고 싶어하고, 동양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를 만들어내는 이데올로기적 작용을 한다. 개념의 기능에서 알 수 있는 점은 하나의 개념은 그와 이항대립적인 개념을 만들어내고, 다른 개념과의 차이를 통해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서양의 정체성은 서양사회의 내적과정을 통해서 뿐 아니라, 서양(유럽)이 아닌 다른 세계들과의 차이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또, 한번 개념이 형성되면 개념은 개념의 요소들을 동질하다고 가정하게 된다. ‘서양’이라는 용어는 서양을 통일적이고 동질적이며 단 하나의 어떤 장소인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효과가 있고, ‘동양’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개념은 동질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자기 내부의 차이를 억누르게 된다. ‘서양’이 자신의 ‘내적 타자들’(가령, 유대인, 집시)을 억압하거나 무시하거나 제거하려고 했던 역사는 이를 잘 보여준다.
2.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실제로 유럽인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유럽의 팽창과정은 크게 두 가지 사건과 관련해서 파악할 수 있다. 첫째는, 포르투갈의 초기 아프리카 해안 탐사(1430-1498)이고, 둘째는, 콜럼버스의 신세계 항해(1492-1502)이다. 르네상스를 거치며 유럽에는 봉건사회가 사라지고 중앙집권적 군주제가 등장하고, 무역과 상업이 발전하고, 과학과 예술, 지식이 급속히 팽창하는 시기를 맞는다. 무역과 상업의 발달은 지식의 발전과 맞물려 ‘탐험의 시대’를 낳는다.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이 15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를 차례로 ‘발견’하게 되고, 그 “부와 토지, 노동력 및 천연자원을, 유럽의 발전을 위해 착취하는 심대한 사업을 그 주요한 기획으로 삼았다”(421쪽).
이 과정에서 유럽은 자신을 단일한 문명, 즉 ‘서양’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러한 ‘단일성’의 핵심은 ‘기독교성’에 있었다. 마이클 만(Michael Mann)의 「유럽의 발전을 설명한다」("European development: Approaching a historical explanation")에 따르면, 유럽의 가장 강력하고 포괄적인 사회적 정체성은 기독교인이라는 것이었다(475쪽). 또, 존 로버츠(John M. Roberts)도 『서양의 승리』(The Triumph of the West)라는 책에서, 13-14세기 이후, 늦어도 15세기에는 유럽이 “‘기독교’세계라는 개념 그리고 ‘유럽인’은 ‘기독교인’이라는 관념과 상호교환될 수 있게 되었다”(479쪽)고 쓰고 있다. 이렇게 유럽이 자신들을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과 연결시키게 된 것은 이슬람 세력과의 갈등에서 연유한다. 존 로버츠에 따르면, “‘유럽인’이라는 단어는 샤를 마르텔의 (이슬람 세력에 대한) 뚜르(Tours)전 승리와 관련하여 18세기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424쪽) 또, 탐험과 정복을 통한 서양 외의 세계들을 접하면서 유럽은 스스로를 규정한다. 다른 세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이 방식은 홀의 이 논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세계를 발견하고 교류했다고 해도 그 지식이 유통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언제나 경험은 지식의 형태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된다. 유럽의 비유럽에 대한 경험 역시 다양한 책과 연구를 통해 유통되는데, 이러한 지식은 ‘담론’(discourse) 형식을 통해 형성된다. 그렇다면 담론이란 무엇인가?
3.
담론은 어떤 주제에 대한 “일단의 조리있는 혹은 합리적인 말 또는 쓰기, 즉 언설(speech) 또는 어법”(427쪽)을 말한다. 담론 개념을 정립한 푸코에 따르면 담론에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정도의 특징이 있다(428쪽). (1)모든 담론은 입장을 구성한다. 어떤 담론 질서 속에 있느냐 하는 것이 구체적 언술보다 중요하다. (예컨대, 조선일보에 글을 쓰는 개인은 조선일보가 생산하는 담론질서 속에 포섭된다.) (2)담론은 다른 담론들에 있는 요소들에 의지하여 자신의 의미망 속으로 그것들을 결합시킨다. 다시 말하면 담론은 타 담론들과 결합되어 있다. (가령, 북핵담론은 경제담론, 안보담론 등과 항상 결합되어 생산된다.) (3)담론구성체 내의 진술이 모두 동일하지는 않지만, 그들 간의 관계는 규칙적이고 체계적이다. 이러한 담론은 반드시 사실/허위를 전제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개별 진술들은 사실일 수 있으나,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방향성을 가진 담론이 되면 거짓된 주장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이것은 언어 그 자체가 언제나 사실을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점과도 연결된다(자유의 투사/테러리스트의 예). 하지만, 이 담론의 질서 안에서 사람들은 실제로 행동을 하게 된다. 담론이 권력이 되는 것이다. 담론은 권력과 관련되어 있지, 진리와 관련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푸코는 말한다. “진리는 권력 바깥에 있지 않다. 진리는 이 세계의 것이며, 그것은 무수한 형태의 강제로써만 생산된다. 그리고 그것은 일정한 권력효과를 가져온다”(433쪽). 요컨대, 담론이 진리냐 허위냐 하는 문제는 담론이 효과적이냐 하는 문제보다 덜 중요하다. 담론이 효과적일 때, 그것은 ‘진리체계’(regime of truth)가 된다.
서양이 동양을 담론화를 통해 재현할 때, 푸코가 ‘진리체계’라 부르는 의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사이드(Edward Said)의 ‘오리엔탈리즘’ 연구이다. ‘동양학’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오리엔탈리즘은 고문서나 여행기 등으로 구성된 ‘오리엔트(지금의 중동)에 대한 연구’를 말한다. 이 오리엔탈리즘의 주요한 원천으로는 고전지식, 성서적 원천, 신화, 여행자들의 이야기 등이 있다. 이러한 원천들은 ‘사실’에 기반을 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환타지’에 불과했지만, 그 ‘환타지’들이 동양에 대한 서양인들의 지식을 형성했다. 이 과정에서 동양은 (1)지상낙원, (2)단순하고 순수한 삶, (3)사회조직의 미발전과 시민사회의 부재, (4)순수한 자연환경에서 사는 사람들, (5)솔직하고 개방적인 성, 나체, 여성의 미 등으로 재현된다(441쪽). 이는 서양/동양의 이항대립 속에서 도시/낙원, 복잡/단순, 발전/미발전, 문명/야만, 남자/여자, 규율/자연, 옷/나체 등등으로 바꿔 쓸 수 있는데, 동양은 이 이항대립의 두 번째 항(열등한 것)에 놓여진다. 이러한 이항대립을 통한 ‘가르기’는 타자가 재현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런 식의 오리엔탈리즘 담론은 ‘탐험의 시기’에만 존재한 것이 아니라, 유럽인들의 의식을 형성하여 19세기 이후 오늘날까지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담론과 권력).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에서 인용하고 있는 것처럼, 맑스까지도 인도에 대해 논하면서 인도가 영국의 지배를 받는 것이 크게 볼 때 어쩔 수 없는 과정인 것으로 논평하고 있는 것이다.
탐험의 시기를 거쳐 유럽이 계몽주의 시대(진정한 의미의 근대화)에 이르는 과정에도 서양/비서양의 담론이 큰 영향을 끼친다. 소위 ‘고상한 야만인-비천한 야만인’의 스테레오타입화는 서양 사회 내의 성찰적 반성을 가지고 왔는데(가령, 볼테르의 『깡디드』), 이러한 논의가 유럽에서의 사회발전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켰고, 그 속에서 계몽주의 사회철학이 성숙되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선형적 진보의 담론이 틀을 잡았고, 그에 따라 서양을 모델로 하여 진보, 문명, 합리성, 발전, 개인, 자유, 평등, 민주주의 등이 중요한 가치가 되어 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가치는 보편이 되었고, 그 보편적 가치를 퍼뜨린다는 명분으로 서양의 동양에 대한 제국주의적 지배는 정당화되었다.
4.
서양이 오늘날의 ‘근대적’ 사회가 된 과정은 서양사회 내의 내재적 요인도 있었지만, 서양과 대비되는 개념인 동양이라는 외재적 요인이 필수적인 것이었다. 동양이라는 안티테제를 통해 서양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또 동양이라는 담론을 통해 식민지배가 정당화되며, 제국주의적 지배를 통해 서양은 부를 쌓고 지식과 예술, 과학을 끌어 올리게 된다. 제국주의 이후 동양은 오리엔탈리즘을 다시 자신에게 투사하여 서양을 본받고 서양을 뒤따르려 하고, 그것이 곧 ‘근대화’ 혹은 ‘현대화’, ‘선진화’라는 이름의 담론이 되고 있다. 주체는 타자를 만들어 내어 자신을 확립하고, 타자는 다시 다른 타자를 만들어 냄으로써 자신을 주체화하는 이 끊임없는 순환. 이러한 순환을 설명하는 데 이용된, 주체, 타자, 지식, 담론, 권력, 정체성, 차이와 같은 개념들은 서양의 형성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 자신과 세계의 모습을 분석하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 by | 2008/03/01 13:57 | 천개의 고원, 천개의 생각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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